발해는 중국의 지방정권인가 독립국인가
- 알아볼까요
- ▶ 발해의 국왕이 당의 책봉을 받았으므로 발해는 당의 지방정권이었다.▶ 발해는 책봉과 관계없이 왕위 계승이 이루어졌던 독립국가였다.
중국학자들은 당이 발해에 홀한주(忽汗州)를 두고 발해의 국왕을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으로 책봉하였음을 들어 발해가 당에 예속된 지방정권이었다고 한다.
발해의 국왕이 당의 책봉을 받았다는 사실이 발해가 당의 지방정권이었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발해와 마찬가지로 신라와 일본도 당의 책봉을 받고 사절을 보내 조공하였다. 중국학계의 논리에 따른다면 신라와 일본도 당의 지방정권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학자들은 이 대목에서 입을 다문다. 사실 여부를 떠나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발해는 국왕을 ‘황상(皇上)’이라 부르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여 황제국의 면모를 갖추었던 독립국가였다. 또한 당에 유학을 간 발해인들은 빈공과(賓貢科 : 외국인을 위한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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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와 유득공
유득공(柳得恭)은 그의 대표적 역사 저술인 『발해고(渤海考)』에서 백제가 망하고 고구려가 망하자, 신라가 그 남쪽을 영유하고 그 북쪽을 발해가 영유하였으니, 바로 남북국이라고 하였다. 마땅히 남북국사(南北國史)가 있어야 했음에도 고려가 이를 편찬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라 하고, 대씨(대조영)는 고구려 사람이고, 그가 차지했던 땅은 고구려 땅이라며,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