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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백제 개로왕 바둑



백제 개로왕 바둑 관련 포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간단하게 개로왕의 기본 정보를 소개하겠습니다.


백제 개로왕은 백제의 21대 왕으로

별호는 개로왕, 근개루왕,
성씨는 부여이며,
휘는 경사, 여경 입니다,
왕자는 부여문주, 부여곤지

부왕은 백제 20대왕 비유왕입니다.

사망지는 아차성이며

생몰연도는 433년(?) ~ 475년 9월입니다.
재위기간은 455년 9월 부터 475년 9월 총 21년입니다.



- 고구려가 백제를 함락하자 아들 문주왕에게 남긴 한탄의말. 사실상의 유언이나 마찬가지이다.

'난 우둔하고 밝지 못해 간사한 자의 말을 믿어 이렇게까지 되었다.
백성은 쇠잔하고 병사는 약하니 위기가 오더라도 누가 기꺼이
날 위해 싸우겠는가. 난 당연히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하지만 
넌 이곳에서 죽어도 무익하다. 어려움을 피해 국통을 이어라'



백제 개로왕의 역사 기록중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바둑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보면 개로왕바둑에 빠져서 국사를 돌보지 않다가 
나라를 망해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더 들어다 보면 과연 개로왕바둑때문에 망한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도림이 말하길 "성곽과 궁실은 수리되지 않아 방치 되어있고 선왕(비유왕)의 해골은 빈 들판에 가 매장되어있으며 백성의 가옥은 자주 범람하는 강물에 무너지니" 라고 말하고 있다.

도림은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취하기 전에 백제로 보낸 승려이다. 
도림은 백제 개로왕바둑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알고 바둑을 통해 신임을 얻게된다. 이후 전쟁 대비보단 왕권 강화를 위한 궁궐 수리 및 토목 공사를 건의하고 개로왕은 허가한다. 이로 인해 백제의 재정은 파탄 날 지경에 이른다 - 삼국사기 백제 본기 개로왕


궁과 선왕의 능을 축조한 걸 빼면 성곽을 축조하고 한강변을 따라 둑을 건설하게 한 것등은 백성의 생활에 필요한 것이었고, 고구려의 남하 가능성에 대비 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 궁과 능을 증건한 것 역시 단순한 사치 라기보다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소지도 충분하다.

더욱이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에는 장수왕이 고구려 국내에서 귀족 세력들을 숙청한 사실을 언급한다. 이는 개로왕이 고구려의 정사를 꿰 뚫고 있다는 증거이다. 결국 개로왕은 힘에 부쳐서 고구려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지 도림의 꾀임에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그리고 국경을 지키던 장수 (재증걸루, 고이만년)이 고구려로 투항한 것도 컸다.

투항 후 급하게 국경으로 다른 장수들을 보냈지만 야전 사령관 둘이나 이탈해서 투항했으니 군의 사기야 말할 것 도 없이 떨어졌을것이다.

게다가 장수왕이 침공했을때 문주가 구원군을 요청하러 간 곳이 백제의 지방 정부가 아니라 신라라는 사실을 보면 이미 승패가 결정된거라고 봐도 무방한것 같다. 백제의 지방 정부가 아닌 다른 나라로 지원 요청을 하러 간거 보면 백제의 중앙정부와 백제의 지방 정부 간에 연대가 거의 없었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즉 백제의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가 고구려의 침략을 받던지 말던지 신경을 안쓴다는 소리밖에 안된다. 이는 백제가 멸망할때 까지 문제가 된다.

그리고 단순히 개로왕바둑만을 두기 위해 도림을 가까이 한 것이 아니라, 도림이 개로왕에 접근해서 백제의 내정을 파악하려 했던 것 처럼, 

개로왕이 도림으로 부터 고구려의 내부 사정을 파악 하려 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개로왕바둑을 좋아한건 사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