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동북공정’의 추진 의도와 ‘동북공정’식 역사인식의 억지
‘동북공정’은 2002년 2월부터 5년간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과 동북 3성
이 연합해서 추진한 중국의 국책 연구사업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향후 한반도에서 예상되는 정세변화가 중국 동북지역에 미칠 정치적·사회적 영향과 충격을 차단해서 동북지역을 안정화하고, 동북아 국제질서 변화에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국가주의 역사관, 특히 각 민족의 단결을 강조하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동북지역에 적용하여 중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완결하려고 한다. 동시에 조선족이 중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 동요하거나 이탈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중국사’라는 논리를 일반화하여, ‘만주는 한민족의 고토(故土)’,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한국사’라는 한국의 역사인식에 대응하고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 사이의 역사적 관련성을 부정하려고 한다.
또한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한국사’라는 논리가 지속될 경우, 몽골이 원사(元史)를,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가 서역사(西域史)를, 베트남이 진·한(秦漢) 시기 백월(百越)과 남월(南越)의 역사를 각각 자국사로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여긴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의 역사·민족·국가의 정립은 곤란해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역사·민족·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주변 민족국가의 역사논리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와 같은 ‘학술문제’의 차원을 넘어 향후 한반도 정세변화와 직결된 전략문제다. 따라서 ‘동북공정’을 단순히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 프로젝트’ 정도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동북공정’에는 향후 한반도의 정세변화 및 동북아 국제관계 변화에 대한 예측과 대비책 마련이라는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그러한 점에서 ‘동북공정’은 우리 민족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와도 직접 연결되어 있다.
‘동북공정’은 ‘현재’의 필요를 위해 과거의 이미지를 새로 만들어 중화민족 국가의 역사적 연원을 마련하고, 국민적 통합과 영토적 통합을 완수하려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서 각 민족이 이루어낸 역사적 활동은 모두 중국사’라는 현재적 편의의 역사관,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서 활동했던 모든 민족은 당연히 중화민족이고 중국민족’이라는 민족관, 근대 이후 형성된 ‘영토’ 개념이나 ‘국경’ 개념을 전근대 시기까지 소급하여 불분명했던 영역을 현재의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획정하는 영토관 등 모두 ‘영토’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영토 지상주의’ 역사 인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조공·책봉 관계를 근거로 조공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규정하여 중국이 지배했던 공간을 실제보다 넓게 보고 있는 점, ‘동북공정’의 추진배경인 ‘애국주의’, ‘중화민족형성론’ 등 ‘국가주의(중화 우월주의)’가 강하다는 점,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내세워 주변 민족국가의 역사·문화 영역을 잠식하고 문화적 패권주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동북공정’의 논리 속에는 팽창주의적 중화민족주의가 숨겨져 있다.
- 발해를 당의 소수민족 정권으로 묘사하고 있다. 중국 중학교 교과서 『중국역사』(인민교육출판사, 25쪽)
‘동북공정’의 역사적 논리는 주변 국가들과의 학문 교류나 관련 유적들에 대한 공동조사 등을 기초로 도출해낸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기보다는, 현재 중국이 처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국가 전략적 목적에서 나왔다. 따라서 ‘동북공정’의 역사적 논리는 관련 인접 민족국가로부터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특히 중국과 한반도 사이에 문화적·정치적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