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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후기 독도를 지킨 조선의 민간외교가 어부 안용복 안용복한자 : 安龍福, 생몰년 ~ 몰년 : 1799년 (음)발행일2010년 1월 25일분류어부 1, 2차 도일과 울릉도를 둘러싼 마찰 조선은 15세기 초부터 울릉도 주민을 본토(육지)로 이주시키는 ‘쇄환정책’을 실시했다. 17세기 초에는 일본 어부들이 고기잡이 하러 울릉도를 넘나드는 일이 잦았다. 현재 일본의 주장은 이들 일본인들이 막부로부터 도해허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즉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 독도 근해 출몰은 불법적인 어업활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안용복은 본래 부산 동래 사람으로 평민인지 노예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어부로 알려져 있으나 사료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젊은 시절에는 수군인 능로군(能櫓軍)으로 복무했으며, 왜관에서 일본어를 배우.. 더보기
위안부의 진실 - 위안부 제도는 허가받은 매춘이었는가? 4. ‘위안부’ 제도는 허가받은 매춘이었는가? 더보기 ‘위안부’ 제도가 ‘영업 허가를 받은 매춘’의 한 형태였다는 주장은 ‘위안부’ 제도에 대한 가장 잘못된 주장 중 하나다. 일본의 일부 우익인사들은 일본군 ‘위안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유의지로 매춘을 했다고 강조하며,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보기 더보기 ‘위안부’ 제도가 공창 제도하에서의 매춘을 모델로 했기 때문에, 제도상 양쪽의 형태가 일부 유사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공창 제도하에서의 매춘은 국가에서 허가제로 규제를 하는 반면, ‘위안부’ 제도는 일본군과 정부가 운영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군과 정부는 위안소를 직접 운영하거나, 또는 민간업자를 고용해 통제하고 감독했다. 고용된 민간업자들은 일본군과 정부.. 더보기
동북공정 바로알기 고구려사 문제 고구려의 뿌리 알아볼까요▶ 고구려는 중국의 고대 민족이 세운 중국 고대의 지방정권이다.▶ 고구려는 종족의 기원과 역사 계승 의식 모두에서 한국사의 일원임을 보여준다. 중국학자들은 민족의 기원이 국가와 역사의 귀속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여긴다. 이에 입각하여 중국의 고대 민족이 고구려를 세웠으므로 고구려사는 중국사라고 주장한다. 중국학자들은 고구려의 민족 기원을 예맥(濊貊)·부여(夫餘)·고이(高夷)· 상인(商人) ·염제족(炎帝族)에서 찾는다. 최근에는 이들 모두와 한족(漢族)이 결합해서 고구려를 구성했고, 그중 한족이 중심이었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곧 예맥을 포함한 고구려의 구성원 모두가 중국의 고대 민족이었으므로, 고구려는 중국 고대의 지방정권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러 역사서에 고구려는 중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