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인가 독립국인가
- 알아볼까요
- ▶ 고구려는 고대 중국의 영토 안에서 성립·발전·멸망했으므로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고구려는 중국 세력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건국·발전한 독립국이다.
중국에서는 고구려가 한사군 중 하나인 현도군 경내에서 건국되었고, 여러 번의 천도에도 불구하고 한사군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는 현도군 경내에서 건국된 것이 아니라, 현도군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건국하였고, 나라를 세운 이후 한 번도 중국의 영토 안에 속했던 적이 없었다. 따라서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주장은 중대한 역사 왜곡이다.
▲ 국내성 성벽
돌로 쌓은 성벽 아래에서 토성의 흔적이 발굴되었다. 중국학자들은 이를 한의 토성이라 여겨 한 군현이 들어섰던 자리에 고구려가 국내성을 쌓은 것으로 이해하고, 고구려가 한 군현의 경내에서 건국했다는 증거의 하나로 제시해왔다. 그러나 국내성은 추가 발굴조사에서 고구려인이 쌓은 토성으로 밝혀졌다.
돌로 쌓은 성벽 아래에서 토성의 흔적이 발굴되었다. 중국학자들은 이를 한의 토성이라 여겨 한 군현이 들어섰던 자리에 고구려가 국내성을 쌓은 것으로 이해하고, 고구려가 한 군현의 경내에서 건국했다는 증거의 하나로 제시해왔다. 그러나 국내성은 추가 발굴조사에서 고구려인이 쌓은 토성으로 밝혀졌다.
- 생각열기
- •『삼국지(三國志)』 : 현도군의 동쪽 경계에 작은 성을 쌓아 그 가운데 조복과 의책을 놓아두면 세시(歲時)에 와서 가져감 → 현도군과 고구려 사이에 경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 조복과 책을 놓아두면 와서 가져갔다는 것은 정치적 지배관계가 아니었으며, 고구려가 중국 영토 밖의 독립국이었음을 보여줌•『삼국지(三國志)』 : 현도군의 동쪽 경계에 작은 성을 쌓아 그 가운데 조복과 의책을 놓아두면 세시(歲時)에 와서 가져감 → 현도군과 고구려 사이에 경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 조복과 책을 놓아두면 와서 가져갔다는 것은 정치적 지배관계가 아니었으며, 고구려가 중국 영토 밖의 독립국이었음을 보여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