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처 - 동북아역사넷

고구려의 인물 연개소문은 어떤 사람일까? 연개소문한자 : 淵蓋蘇文, 이명 : 泉蓋蘇文, 저필자김현숙(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생몰년 ~ 몰년 : 666년 (음)발행일2010년 2월 25일분류귀족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은 왜 ‘천남생’이 되었을까? 동아시아사에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수많은 역사 인물이 등장합니다. ‘동아시아역사인물’은 이런 사람들의 행적을 소개합니다. 이 중에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류 협력에 기여한 사람도 있고, 이에 역행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알려진 인물도 있고, 역사책에는 없지만 귀감이 될 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번 달과 다음 달에는 2회 연속 연개소문의 자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_ 편집자 주 요즘도 심심치 않게 사회지도층 인사 자녀들의 국적포기 문제가 논란이 되곤 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국적을 어느 나라로 선.. 더보기
조선 후기 독도를 지킨 조선의 민간외교가 어부 안용복 안용복한자 : 安龍福, 생몰년 ~ 몰년 : 1799년 (음)발행일2010년 1월 25일분류어부 1, 2차 도일과 울릉도를 둘러싼 마찰 조선은 15세기 초부터 울릉도 주민을 본토(육지)로 이주시키는 ‘쇄환정책’을 실시했다. 17세기 초에는 일본 어부들이 고기잡이 하러 울릉도를 넘나드는 일이 잦았다. 현재 일본의 주장은 이들 일본인들이 막부로부터 도해허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즉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 독도 근해 출몰은 불법적인 어업활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안용복은 본래 부산 동래 사람으로 평민인지 노예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어부로 알려져 있으나 사료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젊은 시절에는 수군인 능로군(能櫓軍)으로 복무했으며, 왜관에서 일본어를 배우.. 더보기
위안부의 진실 - 위안부 제도는 허가받은 매춘이었는가? 4. ‘위안부’ 제도는 허가받은 매춘이었는가? 더보기 ‘위안부’ 제도가 ‘영업 허가를 받은 매춘’의 한 형태였다는 주장은 ‘위안부’ 제도에 대한 가장 잘못된 주장 중 하나다. 일본의 일부 우익인사들은 일본군 ‘위안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유의지로 매춘을 했다고 강조하며,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보기 더보기 ‘위안부’ 제도가 공창 제도하에서의 매춘을 모델로 했기 때문에, 제도상 양쪽의 형태가 일부 유사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공창 제도하에서의 매춘은 국가에서 허가제로 규제를 하는 반면, ‘위안부’ 제도는 일본군과 정부가 운영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군과 정부는 위안소를 직접 운영하거나, 또는 민간업자를 고용해 통제하고 감독했다. 고용된 민간업자들은 일본군과 정부.. 더보기